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바스 왕조 (문단 편집) === 공예 === 중동 지방은 이미 [[로마 제국]] 시절부터 대표적인 [[유리]] 공예품 생산지이자 최상급의 크리스털을 만들어내는 명소로 유명했다. 특히 로마 제국이 중동에서 쫒겨나고 새로 들어선 [[사산 왕조]] 시대에도 유리 공예 기술은 끊임없이 전승되며 발전했고, 이 명맥이 그대로 아바스 왕조 시대까지 전해져 내려왔던 것이다. [[바그다드]]의 유리 공예소에서는 병, 플라스크, 접시, 컵, 화병 등 온갖 종류를 망라한 유리 기품들이 제작되었으며 그 위에 정교하기 짝이 없는 장식들을 세공하곤 했다. 다만 [[우상화]]를 엄격히 금지했던 이슬람 문화권답게 사람의 형상은 웬만하면 그리지 않았고, 대부분이 복잡한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식물 덩굴 무늬, 기껏해봐야 동물이 끝이었다. 회화도 발전했다. 안타깝게도 아바스 왕조 시대의 회화 작품은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실정이라 자세한 연구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들을 조사해보면 우아함과 섬세함이 강한 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마라]]의 궁전 폐허에서는 벽화와 스투코 조각들이 남아있는데, 잘보면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동물들, 하렘의 풍경 등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특징이라면 이전 문화권인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적 특성이 짙다는 점. 아바스 왕조 시대의 회화나 건축 기술은 이전 페르시아과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것을 모방해온 성격이 강하지만, [[도자기]] 기술만큼은 아바스 왕조만의 독창적인 분야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가지각색의 형상과 빛깔을 띤 도자기들이 범람하듯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아바스 왕조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바스 도자기는 주로 8세기와 9세기에 그 정점을 찍었다. 도공들은 노란색 흙으로 도기의 형상을 빚었고, 특수 제작한 [[유약]]을 발라 여러차례 소성하면 금색, 갈색, 붉은색 등 다양한 금속성 광택을 내는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어찌나 기술이 발달했는지 도금이 아니라 유약으로도 금속성 금빛을 내는 것이 가능했고 이걸 이용해서 [[코란]]의 글귀를 황금빛으로 새겨넣기도 했다. [[사마라]]에서는 주로 [[칼리파]]가 사용할 도자기들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다양한 색깔의 타일들을 만들어 납품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지방은 섬유 생산의 중심지였다. 주로 [[콥트교]] 그리스도인들이 원단 생산에 종사했는데 그 품질이 대단히 뛰어나 지중해권 국가들에게까지 수출했다. [[튀니스]]의 경우 아예 원단을 뽑아내는 대규모 공장이 세워져 있었으며 도시 전체에 무려 5,000여 개가 훌쩍 넘어가는 [[베틀]]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서 만든 대표적인 특산품은 고급 [[터번]]용 천인 '카사브'와 상류층들만이 쓸 수 있었던 고급 원단 '바다나'였다고. 특히 아바스 왕조는 뛰어난 직모 기술을 활용해 [[메카]]의 [[카바]] 신전을 덮는 천 '키스와'도 튀니스 지방에서 따로 제작했다. 키스와는 그 무엇보다도 신성한 천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는데, 최고급 흑색 비단에다가 순금을 뽑아만든 실을 박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키스와를 공급하는 것 자체가 이슬람권에서 엄청난 영광이었기에 아바스 왕조는 자금을 아끼지 않고 키스와 생산에 열을 올렸다.[* 이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현재 [[메카]] 신전의 키스와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공급하고 있지만,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집트 왕국]]에서 자청해서 자신들이 키스와 공급을 하겠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오일머니]]로 국력이 커지고 이슬람권의 맹주를 자처하면서 자신들이 직접 키스와를 공급하는 쪽으로 바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